전략 보드게임이 소개되다
이전에 카탄(Catan)이 있었습니다. 카탄의 개척자라고 국내에 소개된 클라우스 토이버의 작품입니다. 카탄은 현역으로 지금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게임입니다. 아울러 국내 시장에서도 단순한 카드 게임이나 순발력 게임이 아닌 좀 더 전략을 필요로 하는 게임으로서 큰 입지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카탄을 통해 보드게임에 발을 딛게 된 많은 사람들. 하지만 카탄이 아무리 큰 재미를 준다고 해도 전략적인 게임에 맛을 들린 게이머들은 더 전략성 있는 게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를 맞춰서 소개된 게임이 있으니, 바로 보난자(Bonanza)라는 획기적인 게임을 만들었던 우베 로젠베르크(Uwe Rosenberg)의 아그리콜라(Agricola)입니다.
아그리콜라는 독일어로 농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7세기 농부가 되어 자신의 농장을 일구고 가족을 먹여살린다는 현실적인 테마는 특유의 일꾼놓기와 카드플레이와 어우러져 엄청난 게임으로 탄생했습니다.
아그리콜라(Agricola)
플레이 인원 : 1~4인
플레이 타임 : 30~120분
주요 시스템 : 일꾼놓기, 카드플레이(드래프팅)
아그리콜라는 이제는 15주년 기념판이 출시된 게임입니다. 기념판 또한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 출시를 해주었습니다. 이렇듯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이지만 2007년 처음 구판이 출시되어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에는 그리 큰 호응을 얻지 못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보드게임 시장이 쭉쭉 성장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불모지나 다름없었고, 더구나 이렇게 어렵고 오래 걸리는 게임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는 어려웠으니까요.
하지만 해외시장에서는 대성공을 일군 게임이었고, 푸에리토리코라는 최장수 긱랭킹 1위 게임의 자리를 빼앗은 게임이도 했습니다. 그만큼 게임성은 확실했다는 얘기지요. 덕분에 보드게임 매니아층이 커지면서 아그리콜라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늘어났습니다.
아그리콜라의 매력
아그리콜라는 일꾼놓기 시스템을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임입니다. 아직도 일꾼 놓기 게임을 꼽으라고 하면 아그리콜라는 한손에 꼽히는 작품이고, 여전히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정도로 일꾼놓기 시스템을 완벽하게 테마와 녹여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테마성이 약한 유로게임 장르로서 아그리콜라는 그 시스템과 테마가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드문 게임 중 하나입니다. 아기자기한 초록색 보드판을 밭, 가축우리, 집 등으로 채워가는 재미가 좋습니다. 덕분에 남성 게이머 뿐 아니라 여성 게이머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지요.
게임의 시스템도 아주 직관적입니다. 자신의 순서에 원하는 칸에 자신의 일꾼(가족원)을 내려 놓으면 해당 칸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가축을 가져 온다거나 식량을 얻는다거나 하는 것이 그것이죠. 메인이 되는 시스템이 간단하기 때문에 자잘한 세부 룰이 있더라도 큰 어려움 없이 받아들이고 플레이하면서 숙달할 수 있는 게 장점입니다.
결정적으로 아그리콜라에는 '카드'가 있습니다. 구판에서는 훨씬 많은 카드가 있었고, 신판에서는 덩치를 줄였지만, 다양한 카드확장을 통해서 폭넓은 카드풀을 가지고 있는데요. 카드는 직업카드와 보조설비 카드 2종류로 크게 나뉩니다. 카드 드래프트를 통해서 이번 게임에서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게임 시작 전에 구상하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양상의 게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무한에 가까운 리플레이성을 갖게 되었죠. 이때문에 15년이 지난 지금도 아그리콜라 이상가는 리플레이성을 가진 유로게임은 드문 편입니다.
아그리콜라의 어려움
아그리콜라의 어려움은 거의 정확히 아그리콜라의 장점의 반작용으로 파생됩니다. 중심이 되는 시스템은 직관적이고 간단하지만 게임이 매우 빡빡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액션은 자신의 차례까지 남아 있지 않고 다른 플레이어가 가져가며, 뻔히 내가 이득을 취할 것으로 보이는 칸은 선점 당하는 견제 플레이가 횡행합니다. 이러한 견제플레이가 아그리콜라 실력을 높이는 기본 바탕이 되기 때문에 그 어떤 게임보다 실력 게임으로 통하게 됩니다. 아주 온순해 보이는 게임 디자인에 비해 게임은 아주 매운 맛인 것이죠.
자신이 해야할 액션을 몇 번만 놓쳐도 게임은 크게 기울게 되고, 제 타이밍에 식량을 조달하지 못하거나 의미 없는 액션으로 턴을 낭비하면 가족을 먹이는 턴에 식량이 부족하게 됩니다. 그럴 경우 엄청난 감점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초보자는 이러한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하기 일수입니다. 그래서 아그리콜라를 최악의 플레이 경험으로 꼽는 플레이어도 많고, 한 번 플레이하고 다시는 플레이 하지 않는 사람도 꽤나 되는 편입니다.
또한 가족들을 먹이기가 아주 빡빡합니다. 총 6라운드로 구성되며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가족 구성원 수 *2의 식량을 마련해야 합니다. 한 라운드에 행동할 수 있는 턴이 점점 줄어들기도 하고, 일꾼으로 쓸 수 있는 가족 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제대로 계산이 되어 있지 않으면 식량이 빵꾸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폭넓은 카드풀이 발목을 잡는 주요 요소입니다. 앞서 설명한 요소들은 사실 게임을 빡빡하게 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작용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장의 카드 기능을 어느 정도는 숙지하고 있어야 제대로 자신이 구상한 게임을 할 수 있고, 본격적인 아그리콜라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초보자들이 쉽게 다가설 수 없게 만듭니다.
아그리콜라 보드게임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매력이 무엇인지, 또 즐기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간단하게 알아보았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취향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그리콜라 같은 빡빡한 게임은 더욱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부류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십 여 년을 넘게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보드게임인 만큼, 보다 깊은 전략 보드게임을 시작해보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